혼전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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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쌤의 사유화 문서입니다. 결혼에 앞서 지금까지 모은 깨달음을 모아봅니다. 틀:솔로졸업논문

  1. 솔로졸업논문:머릿말
  2.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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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배우자를 찾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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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결혼
  8. 결혼식
  9. 결혼 이후의 삶
  10. 출산
  11. 솔로졸업논문:닫는말

1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혼전순결이라니. 이처럼 구닥다리인 말이 있을까. 남녀 간의 사랑에서 순결을 지키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이며,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혼전순결을 지키라 요구하는 것이 꼰대질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20살 이상의 성인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성관련 문제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일도 우스운 일이다. 다 큰 어른이 어떻게 행동하든...

어쩌면 이 도덕은 극복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한편, 따라야 하는 것이라면 왜 따라야 하는지 파헤칠 가치는 있을 것이다. 니체가 말하길 인간은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규범을 따르기만 하는 낙타에서 이를 깨고, 다시금 규범을 깨는 행위 자체에 속박되지 않는 어린아이가 되기까지.. 그 결과로 규범을 따르게 되든, 새 규범을 만들게 되든 고민하게 되는 과정은 언제나 가치롭다.

한편, 니체는 또 이렇게 말했다. "순결을 설교하는 것은 반자연으로의 공공연한 선동이다. ... 그리스도교는 에로스에 독을 타 먹였다. 그로 인해 에로스는 죽지는 않았지만, 타락해 부도덕해졌다."('선악의 저편' 130쪽.[1])

2014년도엔대학생의 65.5%가 성경험을 한 것으로 보고되었다.[2] 지금은 더하겠지.

2 성행위[편집 | 원본 편집]

2.1 정의[편집 | 원본 편집]

성행위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수컷의 유전자를 암컷에 전달하는 행위로 정의하는 것으로 이견은... 있다. 유전자 교환이 아니더라도, 오히려 유전자 교환을 배제하고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는 행위이므로. 어찌 정의해야 할까. 서로의 성기가 합쳐지는 것? 그저 맞닿는 것? 손으로 은밀한 곳을 만지는 것도 성행위라 보아야 할까? 키스는? 성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손을 맞잡는 것도 성행위라 보아야 할까? 인간의 문화가 발전할수록 더욱 복잡해지고 개념과 개념 사이의 관계는 더욱 흐릿해진다. 무엇을 성행위라 불러야 할까. 그것 자체만으로도 공통적인 결론에 이를 수가 없다. 사랑을 정의할 수 없었듯, 성행위에 대한 개념도 자신만의 것을 정립해야 하리라.


2.2 특성[편집 | 원본 편집]

  • 인간의 사랑과 동물의 발정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단언컨대 누구라도 이 둘을 구분할 수 없으리라.
  • 친밀도가 필요하다.
    성행위는 방어기제를 완전히 벗어내야 할 수 있는 것. 사람이 허용하는 거리는 친밀도에 따라 달라진다.
    서로 유지하는 거리가 친밀도를 드러내 보여주는가 하면, 반대로 가까운 거리가 친밀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3]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여간 성행위는 기본적으로 남녀 사이에 일정 거리 이하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친밀도가 필요하다.
  • 유대감을 키워준다.
    성관계는 바소프레신, 옥시토신과 같은 물질을 분비하게 하는데, 캘리포니아 쥐는 바소프레신을 투여받으면 교미하지 않더라도 암컷에게 자상한 태도를 보였다.[4] 문제가 생겼을 때 억지로라도 갖는 성관계는 분명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결국 오랜 시간의 종적 적응에서 만들어진 기제인 듯한데.. 뇌를 속이는 것만으로도 관계 개선에 분명 도움이 된다.
  • 사랑과 별개.
    한편, 육체적 관계가 없는 사랑의 사례도 있어 성행위가 사랑의 필요조건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5]

2.3 부정적 면모[편집 | 원본 편집]

아이를 가져다주고, 둘 사이의 유대감을 키워주는 등 성행위는 기본적으로 해보단 득이 많다. 그러나 물도 많이 마시면 저나트륨 혈증이 생기듯, 산소농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독이 되듯 긍정적인 개념도 오용되면 삶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성적인 죄는 모나리자에 페인트를 뿌려놓는 것과 같다.[6]"

2.3.1 성매매[편집 | 원본 편집]

이 또한 의견이 분분하여 글로 논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훗날의 토론을 위하여 공간을 마련해본다.

2.3.1.1 자본의 교환[편집 | 원본 편집]

단순히 생각하면 대가를 지불하고 일용직 노동자의 노동을 구입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능력(외모, 기술)에 따라 다른 임금을 받는 셀러리맨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는 일이다. 타인에게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음식점의 종업원이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사들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게 모더니즘과 자본주의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요소로 환원하고 나면 아무리 잔혹한 일도 일상의 루틴과 다를 바 없어진다.

2.3.1.2 인간의 소외[편집 | 원본 편집]

성매매는.. 상대를 도구로 이용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특정 대상과의 교감을 위한 것이라기보단 자신의 정욕을 풀어내는 데 상대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것으로,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지만, 정욕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으로, 상대를 파괴하곤 한다. 사랑은 단 한 사람에게. 하지만 정욕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할 대상은 성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을 사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단순하다. 돈이 되니까 성을 파는 것일 뿐. 자본주의에선 당연한 흐름이다. 헌데, 파는 사람들이 손쉽게 누리는 부에 가리워 비판의 정확한 초점을 잡기가 어렵다.

한편, 성매매 자체를 불법으로 지정하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뿌리뽑지 못하는 상황도 우스운 일이다. 어른이 어른의 지극히 사적인 소비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규제하지 않되, 바른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국가에서 해줄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3.2 모호한 의사소통으로 인해 발생[편집 | 원본 편집]

거절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거나 적극의사를 표현 못하는 경우 데이트성폭력의 발생 가능성이 증가한다.(Livingston, Testa&VanZile-Tamsen,2007[7]). 또한 의사소통 능력이 낮을수록 원하지 않는 성교 경험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장윤경,2006[7]) 이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애매모호한 의사소통 때문이다. '예'의 의미일 때 명목상 저항으로 '아니오'를 말하고, '아니오'의 의미일 때 '예'라고 말하는 애매한 성적 응낙을 빈번히 사용(Krahe et al.,2000[7])하는 것을 통해 결국 상대방의 동의여부를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의지하게 한다(남현미, 2003[7]).

2.3.3 적극적인 요인으로 발생[편집 | 원본 편집]

사랑하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것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드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성행위는 여성이 남성에게 허락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남성에게 외면받을까 두려워 그를 붙잡아 두는 방략으로 자신의 성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3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는 이유?[편집 | 원본 편집]

3.1 인격의 문제[편집 | 원본 편집]

그럴 능력이 있고, 그럴 의지가 있는데 굳이 막는 것도 이상해보인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무절제와 이기심의 태도는 상대에게 상처를 안겨준다. 때문에 성적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것은 인격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결혼 후에도 충동과 무절제로 부부간의 신뢰를 깨기 쉽다.[8]

'성적 방종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덜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든다.'[9]

3.2 불안함의 제거[편집 | 원본 편집]

성의 문제에서 죄책감, 수치심, 후회의 감정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해보인다. 나는 딱히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만큼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당당하게 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불안한 상태에선 게임도 즐겁지 않다. 당당하게 놀기 위해, 이런 부적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힘쓴다.

3.3 남성[편집 | 원본 편집]

'속시원한 본능의 배설은 찬양받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위선과 가식으로 증오받는다. 그러나, 본능을 자제하는 것이 문명이다.' [10]

3.3.1 결혼 상대를 정하기 위해[편집 | 원본 편집]

결혼하기 전엔 두 눈을 크게 뜨고, 결혼한 이후엔 두 눈을 감고 지내라는 격언이 있다. 그만큼 결혼상대를 탐색하는 데 있어 식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상대방에 대한 이성적인 통찰은 중요하다. 허나, 혼전의 성관계는 그 이성적인 영역을 일부 잠재운다.

3.3.1.1 성은 상대의 특수성이 아닌, 일반성에 몰입하게 한다.[편집 | 원본 편집]

여체가 주는 만족감은 엄청나다.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그 만족감이 결혼상대 고유의 특성인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다만, 혼전 성관계는 그 개체의 특수성이 아닌, '여성' 혹은 '육체'라는 일반성에 몰입하게 한다. 굳이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물론 개체마다 허리가 잘록하다든가, 골반의 모양이 어떠하다든가 특수성이 있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개체가 가진 '잘록한 허리'라는 일반성에 몰입하게 만든다.

3.3.1.2 개체의 일부에 몰입하게 한다.[편집 | 원본 편집]

그 개체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에만 몰입하게 만든다. 전체가 아닌, 그것이 지닌 일부의 특성을 좋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기호이다. 실존이 아닌 본질로서, 이유로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성관계는 사랑의 부수적인 결과가 되어야지, 그것이 목적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3.3.2 진짜 사랑을 찾기 위해[편집 | 원본 편집]

  • 굳이 성관계가 아니고 그저 손잡기, 포옹하기만으로도 거대한 충족감과 수용감이 들기 마련이다. 밖에서 할 수 있는 스킨십도 그만한 만족감을 주는데, 성관계는 어떠랴;; 그런 만족감과 기쁨은 전인적인 교감에서 나오는 사랑과 구분하기 힘들다.
  • 사랑은 전적인 관계에서 얻어지는, 본질이 아닌 실존적인 것인데, 충분한 다양성이 쌓이기 전의 육체적 관계는 그 관계를 본질적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다.
  • 친밀도가 거리의 밀접함을 나타내는 반면, 거리의 밀접함이 친밀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즉, 성행위 후엔 해당 행위가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가짜 친밀함이 만들어진다.(이것을 가짜로 보아야 할지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남녀의 관계는 단지 육체적 친밀함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균형을 잃고 한 쪽에 치우치게 되면 그 치우침이 사라지게 되면 그 관계도 끝나버리고 만다.

3.4 어떻게 지킬 것인가?[편집 | 원본 편집]

차선 중앙에 그려진 주황색 선은 막을 수 없지만, 내가 죄짓는 것을 막아주는 귀중한 지표이다.[6] 주황색 선이 있다고 그 선이 우리에게 어떤 위협이나 경고를 주진 못한다. 성의 오용에 대한 부작용은 명확하게 볼 수 없다. 마치 아무도 없는 도로의 주황 선처럼. 중앙선을 넘는 것의 위험성을 아는 사람은 직접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본 사람이나, 사고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 등이다.

많은 차량들이 오가며 도로의 중앙선은 흐릿해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디에 선을 긋고 이를 지킬 것인가. 어떤 행동에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기에 넘어선 안될 구체적 행동을 정해두는 일이 필요하다. 나를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구해줄.

4 각주[편집 | 원본 편집]

  1. 재인용. 양대종."니체 철학에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철학연구(2018.02):297-321
  2. 김정애와 이정렬(2014)
  3. 코메디닷컴. '남녀 접촉 잦으면 감정적 친밀도↑ (연구)'
  4. 타라 파커포프(2012).『연애와 결혼의 과학』. 민음사. p.327
  5. 가토 슈이치(2013).『연애결혼'은 무엇을 가져왔는가』. 소화 p.56
  6. 6.0 6.1 조슈아 해리스(2002).『YES 데이팅』. 두란노
  7. 7.0 7.1 7.2 7.3 재인용. 전송이."이성교제 시 여대생의 성 의사소통 유형". 한국주관성연구학회(2017.12):121~144
  8. 이기복(2011).『결혼코칭』. 두란노서원 p.119~120
  9. 제임스 패커(2008).『하나님을 아는 지식』.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p.179
  10. 문유석(2015).『개인주의자 선언』. 문학동네 p.133